[쏴아아아――]

찬물이 어깨를 세게 때렸다.

소희는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살 것 같았다.

오늘 훈련은 유난히 길었다. 방탄헬멧과 방탄조끼, 고글, 진압장비, 그리고 활주로 복사열까지. 검은 기능성 흑복 안에 갇혀 있던 열기가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특수임무소대의 여름 훈련은 사람을 삶는다. 훈련 한 번만 뛰어도 속옷까지 전부 젖는다.

“하아···”

소희는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차가운 물줄기가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도 샤워기 아래에서는 조금 풀어졌다.

오늘은 뜨거운 물이 싫었다. 차갑게, 아주 차갑게 식어버리고 싶었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소희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탈의실로 걸어갔다.

텅 빈 장교 목욕탕 안은 조용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아직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오늘은 괜히 누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소희는 사물함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 안을 내려다봤다.

복숭아색 끈나시 크롭탑. 복숭아색 쉬폰 레이어 숏스커트. 복숭아색 샌들 하이힐. 화장 파우치. 향수. 그리고 속옷 파우치.

그녀는 잠시 옷들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전까지 검은 방탄복을 입고 진압훈련을 하던 인간 맞나 싶었다.

“진짜 극단적이네.”

그래도 이 순간이 좋았다.

군복을 벗는 순간.
“이소희 소대장님”이 아니라 그냥 스물다섯 여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는다. 밖에 나가면 또 신경 쓰인다. 누가 보는지, 몇 번이나 뒤돌아보는지, 시선이 얼마나 따라오는지.
그러면서도 막상 누가 번호를 물어보면 당황해서 철벽을 치고 도망간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취미였다.
그런데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여군 장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끔 그런 기분이 든다.
내가 점점 “여자”가 아니라 “군인”으로만 굳어가는 느낌.

특히 특수임무소대는 더했다.

맨날 검은 옷에 전투화, 방탄장비, 땀 냄새, 긴장, 스트레스뿐이었다.

그러다 주말 밤에 예쁘게 꾸미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잠깐씩 돌아본다.
그 순간만큼은 아직 자기가 여자라는 게 실감났다.

소희는 브래지어를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매무새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군복 차림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났다.

어깨끈 위치를 다시 맞추고 전체적인 옷맵시를 확인한 뒤,
소희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됐네.”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어서 복숭아색 끈나시를 입고 쉬폰 스커트를 정리해 입었다. 마지막으로 샌들 하이힐까지 신자 전체 분위기가 완성됐다.

복숭아 공주.

친한 친구가 봤으면 분명 그렇게 놀렸을 스타일이었다.

소희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긴 다리 라인.
얇은 허리.
여성적인 실루엣.
그리고 군생활이 만들어버린 차갑고 예민한 눈빛.

귀엽게 입었는데도 분위기는 묘하게 냉했다.

잠시 후 화장까지 마친 소희는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정리한 뒤 가방을 들었다.

“···좋아.”

그녀는 목욕탕 건물을 나섰다.

뜨거운 여름 공기가 다시 피부에 닿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이제는 군복 차림이 아니었다.

소희는 비행단 중앙대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의 비행단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외출 나가는 병사들과 복귀 차량, 간부들,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시선들이 뒤섞여 있었다.

소희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

지나가던 병사 둘이 순간 말을 멈춘다.
멀리 가던 간부 하나가 무심한 척 다시 한번 쳐다본다.
위병소 방향에서 오던 병사들도 힐끔힐끔 시선을 보낸다.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소희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 순간 뜨거운 여름 바람이 중앙대로를 길게 훑고 지나갔다. 얇은 쉬폰 레이어가 바람에 펄럭이며 허벅지 라인을 스쳤다.

또각.
또각.

샌들 하이힐 소리가 중앙대로 위를 규칙적으로 울렸다.

오늘은 꽤 괜찮다.
그 생각이 들었다.

아직 괜찮다.
아직 여자 이소희는 안 죽었다.

잠시 후 비행단 정문이 가까워졌다. 위병소 바깥 외곽 주차장. 오늘 차를 세워둔 곳이었다.

소희는 그대로 정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이소희 소위님!! 이 소위님!!”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희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군복 차림의 병사 하나였다. 숨까지 헐떡이며 전력질주 중이었다.

'누구지?'

소희는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 시설대대 쪽이었나? 장교 목욕탕 시설관리 때문에 한두 번 지나가다 본 적 있는 병사였다.

이름은··· 아마 김태환 병장.
그 정도만 기억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병사 손에 들린 물건이었다.

하얀 천.
레이스.
작은 리본.

순간 소희의 걸음이 멈췄다.

“···어?”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설마.
아니겠지.

김태환 병장이 헐떡이며 가까워졌다.
그리고 거의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외쳤다.

“이소희 소위님!! 이거···!! 목욕탕에 두고 가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소희의 시선이 그 물건에 정확히 꽂혔다.
하얀 레이스 팬티.
자기 것이었다.
정확하게 자기 것이었다.

순간 귀 안쪽이 멍해졌다.
주변 소리도 잠깐 사라졌다.

정문.
위병소.
외출 병사들.
지나가는 간부들.
그리고 자기 팬티를 들고 비행단 중앙대로를 전력질주해온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 시설병 하나.

“···아.”

소희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만 작게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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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임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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