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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7.12 [제3화] 사회적 사망
  2. 2026.07.12 [제2화] 여자 이소희

“···아.”

소희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문.
위병소.
외출 병사들.
지나가는 간부들.

그리고 지금 자기 앞에는 장교 목욕탕 시설관리병인 김태환 병장이 서 있었다.

그 손에는 하얀 레이스 팬티가 들려 있었다.
정확하게 자기 것이었다.

순간 귀 안쪽이 멍해졌다.

태환은 숨을 한번 고른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소희 소위님.”

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없었다.
아니, 너무 없어서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

태환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걸 놔두고 가시면 본인도 당황스럽겠지만, 저희도 난감합니다. 앞으로는 개인 소지품 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십시오.”

순간 소희는 자기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인간이 자기 팬티를 들고 훈계하고 있었다.

“김태환 병장.”

“예.”

“지금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뛰어온 건가?”

그제야 태환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그리고 뒤늦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위병소.
외출 병사들.
간부 차량.
몇몇 시선이 이미 이쪽을 힐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손에는—

여군 장교의 하얀 레이스 팬티.

태환은 숨이 순간 턱 막혔다.

'아.'

'젠장.'

소희는 한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진짜 죽고 싶었다.

태환은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일단 그거부터 줘봐.”

“예.”

태환은 거의 폭탄 처리하듯 팬티를 넘겼다. 소희는 그걸 순식간에 가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여름 바람만 뜨겁게 지나갔다.

태환은 차렷 비슷한 자세로 굳어 있었고,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짚고 있었다.

둘 다 지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잠시 후 소희가 낮게 물었다.

“그게 왜 내 거라고 판단했지?”

태환은 짧게 답했다.

“조금 전까지 장교 목욕탕은 이소희 소위님 혼자 사용하셨습니다. 이용 인원도 없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교 목욕탕은 병사 목욕탕처럼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이 아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이면 이용 인원은 더 적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소희 혼자 사용한 것도 태환은 알고 있었다. 시설 점검 때문에 밖에서 대기 중이었으니까.

소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왜 바로 안 불렀나.”

“샤워 중이신 것 같아서 못 들어갔습니다.”

“···”

“나오실 때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정문 쪽으로 이동하셔서···”

거기까지 말하던 태환의 입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방금 한 행동은 정상이 아니었다.

팬티를 들고 전력질주.
정문 앞에서 “이소희 소위님” 공개 호출.
시설병 인생 통틀어도 다시 없을 사고였다.

태환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소희는 그걸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저 인간도 이제야 상황 심각성을 체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 멘탈이 복구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죽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 바람이 정문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소희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은 잊어라.”

태환은 몇 초 늦게 대답했다.

“···예.”

둘 사이 공기가 아직도 끔찍하게 어색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태환의 시선이 아주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

복숭아색 쉬폰 스커트 자락.
얇은 어깨끈.
방금 전까지 군복을 입고 진압훈련하던 FM 장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순간 소희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태환은 거의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소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귀 끝이 천천히 붉어지고 있었다.

정문 앞 여름 공기가 숨 막히게 더웠다.

잠시 후 태환은 어색하게 경례를 붙였다.

“필승.”

그리고 거의 도망치듯 부대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희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힘없이 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봤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예쁜 유리구두라도 빠트리고 갔으니 행복한 왕비님이 되었지···'

그녀의 입꼬리가 허탈하게 떨렸다.

'나는 그냥 실속 없이 빤쓰나 빠트린 멍청한 빤쓰렐라네···'

순간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끔찍한 가능성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러면, 비행단 본부 구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다들 힐끔힐끔 쳐다본 게—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그 이유라서였나?'

소희의 눈이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분명 시선 방향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쩐지 다들 얼굴이 빨개진 채 시선을 아래로 깔더라.

'설마, 설마 진짜—'

소희의 손이 천천히 쉬폰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아까는 바람도 많이 불었다.

중앙대로.
정문 앞.
위병소.
그 긴 거리.

“···아.”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그런 줄 알았으면 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있을 게 아니라 치맛자락부터 눌러내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희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진짜 죽고 싶었다.

그리고 사고회로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달에 이 지역으로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온다던데.
거기 예심이라도 한번 나가서 전국적으로 내 미모나 자랑해볼까 생각했는데—

전국노래자랑 하기 전에 <전국사타구니자랑>부터 먼저 해버렸다.
이젠 멀쩡히 시집 가기는 글렀다···

“아 젠장···”

귀 끝까지 새빨개진 소희가 그대로 위병소 벽에 이마를 살짝 박았다.

[쿵.]

“죽고 싶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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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임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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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찬물이 어깨를 세게 때렸다.

소희는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살 것 같았다.

오늘 훈련은 유난히 길었다. 방탄헬멧과 방탄조끼, 고글, 진압장비, 그리고 활주로 복사열까지. 검은 기능성 흑복 안에 갇혀 있던 열기가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특수임무소대의 여름 훈련은 사람을 삶는다. 훈련 한 번만 뛰어도 속옷까지 전부 젖는다.

“하아···”

소희는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차가운 물줄기가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도 샤워기 아래에서는 조금 풀어졌다.

오늘은 뜨거운 물이 싫었다. 차갑게, 아주 차갑게 식어버리고 싶었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소희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탈의실로 걸어갔다.

텅 빈 장교 목욕탕 안은 조용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아직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건 다행이었다.
오늘은 괜히 누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소희는 사물함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 안을 내려다봤다.

복숭아색 끈나시 크롭탑. 복숭아색 쉬폰 레이어 숏스커트. 복숭아색 샌들 하이힐. 화장 파우치. 향수. 그리고 속옷 파우치.

그녀는 잠시 옷들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전까지 검은 방탄복을 입고 진압훈련을 하던 인간 맞나 싶었다.

“진짜 극단적이네.”

그래도 이 순간이 좋았다.

군복을 벗는 순간.
“이소희 소대장님”이 아니라 그냥 스물다섯 여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는다. 밖에 나가면 또 신경 쓰인다. 누가 보는지, 몇 번이나 뒤돌아보는지, 시선이 얼마나 따라오는지.
그러면서도 막상 누가 번호를 물어보면 당황해서 철벽을 치고 도망간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취미였다.
그런데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여군 장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끔 그런 기분이 든다.
내가 점점 “여자”가 아니라 “군인”으로만 굳어가는 느낌.

특히 특수임무소대는 더했다.

맨날 검은 옷에 전투화, 방탄장비, 땀 냄새, 긴장, 스트레스뿐이었다.

그러다 주말 밤에 예쁘게 꾸미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잠깐씩 돌아본다.
그 순간만큼은 아직 자기가 여자라는 게 실감났다.

소희는 브래지어를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매무새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군복 차림일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났다.

어깨끈 위치를 다시 맞추고 전체적인 옷맵시를 확인한 뒤,
소희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됐네.”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어서 복숭아색 끈나시를 입고 쉬폰 스커트를 정리해 입었다. 마지막으로 샌들 하이힐까지 신자 전체 분위기가 완성됐다.

복숭아 공주.

친한 친구가 봤으면 분명 그렇게 놀렸을 스타일이었다.

소희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긴 다리 라인.
얇은 허리.
여성적인 실루엣.
그리고 군생활이 만들어버린 차갑고 예민한 눈빛.

귀엽게 입었는데도 분위기는 묘하게 냉했다.

잠시 후 화장까지 마친 소희는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정리한 뒤 가방을 들었다.

“···좋아.”

그녀는 목욕탕 건물을 나섰다.

뜨거운 여름 공기가 다시 피부에 닿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이제는 군복 차림이 아니었다.

소희는 비행단 중앙대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의 비행단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외출 나가는 병사들과 복귀 차량, 간부들,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시선들이 뒤섞여 있었다.

소희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

지나가던 병사 둘이 순간 말을 멈춘다.
멀리 가던 간부 하나가 무심한 척 다시 한번 쳐다본다.
위병소 방향에서 오던 병사들도 힐끔힐끔 시선을 보낸다.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소희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 순간 뜨거운 여름 바람이 중앙대로를 길게 훑고 지나갔다. 얇은 쉬폰 레이어가 바람에 펄럭이며 허벅지 라인을 스쳤다.

또각.
또각.

샌들 하이힐 소리가 중앙대로 위를 규칙적으로 울렸다.

오늘은 꽤 괜찮다.
그 생각이 들었다.

아직 괜찮다.
아직 여자 이소희는 안 죽었다.

잠시 후 비행단 정문이 가까워졌다. 위병소 바깥 외곽 주차장. 오늘 차를 세워둔 곳이었다.

소희는 그대로 정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이소희 소위님!! 이 소위님!!”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희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군복 차림의 병사 하나였다. 숨까지 헐떡이며 전력질주 중이었다.

'누구지?'

소희는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 시설대대 쪽이었나? 장교 목욕탕 시설관리 때문에 한두 번 지나가다 본 적 있는 병사였다.

이름은··· 아마 김태환 병장.
그 정도만 기억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병사 손에 들린 물건이었다.

하얀 천.
레이스.
작은 리본.

순간 소희의 걸음이 멈췄다.

“···어?”

머릿속이 잠깐 멈췄다.

설마.
아니겠지.

김태환 병장이 헐떡이며 가까워졌다.
그리고 거의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외쳤다.

“이소희 소위님!! 이거···!! 목욕탕에 두고 가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소희의 시선이 그 물건에 정확히 꽂혔다.
하얀 레이스 팬티.
자기 것이었다.
정확하게 자기 것이었다.

순간 귀 안쪽이 멍해졌다.
주변 소리도 잠깐 사라졌다.

정문.
위병소.
외출 병사들.
지나가는 간부들.
그리고 자기 팬티를 들고 비행단 중앙대로를 전력질주해온 거의 남이나 다름없는 시설병 하나.

“···아.”

소희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만 작게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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