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소희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문.
위병소.
외출 병사들.
지나가는 간부들.
그리고 지금 자기 앞에는 장교 목욕탕 시설관리병인 김태환 병장이 서 있었다.
그 손에는 하얀 레이스 팬티가 들려 있었다.
정확하게 자기 것이었다.
순간 귀 안쪽이 멍해졌다.
태환은 숨을 한번 고른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소희 소위님.”
소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없었다.
아니, 너무 없어서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
태환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걸 놔두고 가시면 본인도 당황스럽겠지만, 저희도 난감합니다. 앞으로는 개인 소지품 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십시오.”
순간 소희는 자기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인간이 자기 팬티를 들고 훈계하고 있었다.
“김태환 병장.”
“예.”
“지금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뛰어온 건가?”
그제야 태환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그리고 뒤늦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위병소.
외출 병사들.
간부 차량.
몇몇 시선이 이미 이쪽을 힐끔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손에는—
여군 장교의 하얀 레이스 팬티.
태환은 숨이 순간 턱 막혔다.
'아.'
'젠장.'
소희는 한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진짜 죽고 싶었다.
태환은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일단 그거부터 줘봐.”
“예.”
태환은 거의 폭탄 처리하듯 팬티를 넘겼다. 소희는 그걸 순식간에 가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여름 바람만 뜨겁게 지나갔다.
태환은 차렷 비슷한 자세로 굳어 있었고,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짚고 있었다.
둘 다 지금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잠시 후 소희가 낮게 물었다.
“그게 왜 내 거라고 판단했지?”
태환은 짧게 답했다.
“조금 전까지 장교 목욕탕은 이소희 소위님 혼자 사용하셨습니다. 이용 인원도 없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교 목욕탕은 병사 목욕탕처럼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이 아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이면 이용 인원은 더 적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소희 혼자 사용한 것도 태환은 알고 있었다. 시설 점검 때문에 밖에서 대기 중이었으니까.
소희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왜 바로 안 불렀나.”
“샤워 중이신 것 같아서 못 들어갔습니다.”
“···”
“나오실 때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정문 쪽으로 이동하셔서···”
거기까지 말하던 태환의 입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방금 한 행동은 정상이 아니었다.
팬티를 들고 전력질주.
정문 앞에서 “이소희 소위님” 공개 호출.
시설병 인생 통틀어도 다시 없을 사고였다.
태환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소희는 그걸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저 인간도 이제야 상황 심각성을 체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 멘탈이 복구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죽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 바람이 정문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소희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은 잊어라.”
태환은 몇 초 늦게 대답했다.
“···예.”
둘 사이 공기가 아직도 끔찍하게 어색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태환의 시선이 아주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
복숭아색 쉬폰 스커트 자락.
얇은 어깨끈.
방금 전까지 군복을 입고 진압훈련하던 FM 장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순간 소희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태환은 거의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소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귀 끝이 천천히 붉어지고 있었다.
정문 앞 여름 공기가 숨 막히게 더웠다.
잠시 후 태환은 어색하게 경례를 붙였다.
“필승.”
그리고 거의 도망치듯 부대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희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힘없이 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봤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예쁜 유리구두라도 빠트리고 갔으니 행복한 왕비님이 되었지···'
그녀의 입꼬리가 허탈하게 떨렸다.
'나는 그냥 실속 없이 빤쓰나 빠트린 멍청한 빤쓰렐라네···'
순간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끔찍한 가능성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러면, 비행단 본부 구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다들 힐끔힐끔 쳐다본 게—
내가 예뻐서가 아니라··· 그 이유라서였나?'
소희의 눈이 천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분명 시선 방향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쩐지 다들 얼굴이 빨개진 채 시선을 아래로 깔더라.
'설마, 설마 진짜—'
소희의 손이 천천히 쉬폰 스커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아까는 바람도 많이 불었다.
중앙대로.
정문 앞.
위병소.
그 긴 거리.
“···아.”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그런 줄 알았으면 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있을 게 아니라 치맛자락부터 눌러내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희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진짜 죽고 싶었다.
그리고 사고회로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달에 이 지역으로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온다던데.
거기 예심이라도 한번 나가서 전국적으로 내 미모나 자랑해볼까 생각했는데—
전국노래자랑 하기 전에 <전국사타구니자랑>부터 먼저 해버렸다.
이젠 멀쩡히 시집 가기는 글렀다···
“아 젠장···”
귀 끝까지 새빨개진 소희가 그대로 위병소 벽에 이마를 살짝 박았다.
[쿵.]
“죽고 싶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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